+ 원래 기념일에 마감을 치려고 했던 무언가... 지금 5월 아니냐구요? 네 그렇습니다

+ 이런저런 날조 주의





“어서 와, 모모 군.”

“다녀왔어요! 유키 씨, 이거 같이 들을래요?”

집 안으로 들어온 모모가 외투도 채 벗지 않은 모습으로 비닐봉투를 뒤적이는 모습에 유키는 별 생각 없이 “뭔데?”라는 물음만 던졌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유명한 레코드 샵 이름이 박힌 비닐봉투였으니 내용물이 CD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모모가 CD를 사 오는 것부터 드문 일이었다.

최근에는 공부한다며 종종 유키의 컬렉션을 가져다 듣고는 있었지만, 모모는 어느 것을 들어도 좋다는 말 이상으로 흥미를 보이지는 않았다. 이쯤 되면 유키의 노래를 모모가 좋아하게 된 것부터 기적적인 일이 아니었을까 고민할 정도였다. 본래 아이돌은 커녕 노래조차 흥미 없었던 모양이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래를 불러 본 일이라고는 노래방 아니면 음악 수업 뿐이었다고 하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모모가 꺼낸 CD를 본 유키는 미묘한 표정으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같이 듣자는 게 그거?”

“네!”

“……저번에 오카자키 동생 한테 받은 거 있는데.”

아무리 무신경한 유키라도 알 수 밖에 없는 물건이었다. Re:vale의 메이저 데뷔 싱글. 유키와 모모, 두 사람의 모습이 프린팅 된 자켓으로 장식된 CD가 비닐에 감싸인 채 고스란히 모모의 손에 들려 있었다.

유키가 알기로는 저것과 똑같은 CD가 수납장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모모에게 물건을 순간이동 시키는 능력이라도 있는 게 아닌 이상에야 손에 들린 CD는 새로 사온 것이 분명했다. 얘기했으면 들려줬을 텐데. 아니, 모모라면 굳이 얘기하지 않고 멋대로 가져가도 상관 없었다.

“그건 그렇지만…… 엑. 설마 유키 씨, 오늘 무슨 날인지 기억 안 나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유키는 기억을 뒤적였다. 생일, 은 둘 다 아직 한참 멀었는데. 라이브는 이번 주말이고. 그 외에 특별히 챙겨야 할 날이 있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질 않았다. 잊어버리면 곤란한 거였나…….

그래봐야 유키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곤란한 얼굴로 모모에게 다시 되묻는 것 뿐이었다.

“……무슨 날인데?”

“발매일이에요! Re:vale 데뷔 싱글!”

아. 그제서야 유키는 짧게 탄성을 냈다. 이번 주말에 있는 라이브가 데뷔 싱글 발매 기념이긴 한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생각해보니 린토에게 받아온 CD였다면 굳이 저 봉투에 담아올 리는 없었다. 그걸 듣고 나서야 눈치채다니. 뭐라 할 말이 없어 모모의 손에서 CD를 받아들었다. 그럼 정말로 사 온 건가. 그리 여유치 않은 생활에 이런 식으로 돈을 쓰게 만들었다는 점이 조금 불편했다.

“아무리 싱글이라도 가격대 좀 있지 않아?”

“……혹시 화났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모모 군도 저번에 싱글 받은 거 알고 있잖아? 왜 굳이 사 왔나 싶어서.”

“아, 그게 말이죠. 신경 쓰여서 가까운 가게에 보러 갔는데, 진열 된 거 보니까 사고 싶어져서…….”

모모의 말에 유키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 금액이면 맛있는 고기 요리를 해줄 수 있었다. 유키는 영양 면에서는 신경 써서 요리한다고 자부하지만, 기호 식품은 별개의 문제였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유키 또한 금전과 선택권만 있다면 신선한 야채를 먹었을 터였다. 환경이 이래서야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모모가 먹을 음식만큼은 좋은 것을 해주고 싶었다. 유키가 모모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 정도 뿐이니까.

정작 그런 생각도 가난한 환경 탓에 쉽사리 실천에 옮길 수는 없었다. 그런 상황이 이어지던 와중에 헛되이 돈을 썼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오지 않을 리가. 물론 헛 쓴 돈은 아니긴 하지만, 집에 굳이 같은 싱글이 두 개나 필요하지도 않았고, 설령 필요하다고 해도 돈으로 살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런 유키의 반응에 모모가 도로 CD를 가져오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뒤늦게 그 모습을 본 유키가 아차 한 표정으로 미소를 띠며 CD를 모모에게 다시 건넸다.

“미안, 방금 건 별거 아니야. 그보다 모모 군, 이거. 이왕 산 건데 직접 개봉할래?”

“네……. 바쁘시면 저 혼자 들어도 상관 없으니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

명백히 눈치를 보는 말에 되려 난감해진 건 유키였다. ……그런 게 아닌데. 오늘은 라이브 연습에 아르바이트로 고생하는 모모를 위해 해야 할 일을 미리 끝내두고 느긋하게 같이 시간을 보내려던 참이었으니 특별한 일도 없었다. 모모가 오자마자 이런 분위기를 만들려는 의도는 정말 없었다. 애초에 유키는 모모가 웃고 있는 모습을 좋아하지,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만 했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모가 미안해하는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고, 모모가 Re:vale의 노래에 애착을 가지는 건 좋은 일이었기에 타박을 하기도 애매했다. 그저 모모에게 맛있는 고기반찬을 해줄 돈이 자신들의 싱글을 사는 데 빠져나갔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렇지만 고기는 돈 벌어서 사주면 되는 거니까. 

“같이 들을게. 나도 모모 군이랑 부른 노래 좋아해.”

집안이 좁은 탓에 선반 위에 올려뒀던 CD플레이어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새 것을 살만한 여유가 없어서 바꾸지 않고 있던 게 신경 쓰였는지, 얼마 전에 모모가 사 온 것이었다. 새 거는 너무 비싸서 중고로 구했다며 엄청 미안해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예전보다 좋은 거였고, 슬슬 바꾸고 싶었기에 불만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모모는 이 플레이어로 듣는 거 처음이네.’

정작 사 온 건 모모인데. 아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모는 유키에 비하면 노래에 그리 관심을 가지는 편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모모가 비닐을 뜯어 유키에게 건네면, 유키가 케이스를 열어 그 안의 CD를 플레이어 안으로 집어 넣었다. 평소에는 헤드셋을 연결하고 듣지만, 오늘은 모모가 옆에 있으니 그대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낮에 너무 시끄럽게 굴면 집주인에게 잔소리를 듣겠지만 오늘은 평일 낮이니까. 집에서 뒹구는 건 아직 잘나가지 않는 아이돌 정도였다.



그러니까, 모모가 이 곳에 있는 것은 순전히 호기심이었다.

‘설마 얼굴 좀 보인다고 들키진 않겠지?’

혹시라도 메쉬 염색을 한 머리카락이 눈에 띌까 모자랑 안경도 챙겼다. 평소처럼 길을 걷는 것 뿐이라면 이런 걱정은 하지 않겠지만, 오늘은 장소도 장소고 상황도 상황이었다. Re:vale 명의의 첫 메이저 싱글이 나오는 날의 레코드 샵. 유키와 모모의 모습이 담긴 커버로 만든 커다란 포스터까지 붙어 있었다. 사무소에서 홍보비로 그리 많은 돈을 사용한 건 아니었기에 다른 아이돌에 비하면 조촐했지만, 그래도 모모에게 있어서는 별세계라는 느낌이었다.

“유키 씨는 잘 어울리지만…….”

원래였다면 이 포스터에 찍혀있는 건 모모가 아니었을 터였다. 유키에게는 모모보다 더 오래도록 함께한 파트너가 있으니까. ……지금은 행방불명이라는 점이 문제였지만. 한숨을 푹 내쉬다가 카운터에 서 있던 직원과 눈이 마주쳐, 모모는 어색하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많지 않았다. 있는 손님도 모모는 관심의 대상이 아닌 듯 무심히 스쳐 지나갈 따름이었다. 들킬 것 같진 않네……. 한숨을 내쉰 모모가 어깨에서 힘을 뺐다. 분명히 좋은 일인데도 이상하게 의기소침해지는 광경이었다. 그야 유키와 달리 모모는 시선을 끌 만한 외모도 아니고, 오늘 막 데뷔 싱글이 나온 아이돌에게 신경 쓰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만은. ……그래도 라이브에는 사람 꽤 많이 왔었는데. 라이브가 있는 날은 그 쪼잔한 린타로가 무한리필이 아닌 고깃집에서 뒷풀이를 할 정도였으니까.

“아, 찾았다!”

한참 주변을 둘러보던 모모가 가게 안쪽에 있는 매대에 쌓여 있는 싱글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발매 전부터 질리도록 본 Re:vale의 데뷔 싱글이었다. 어느 모로 봐도 멋진 아이돌으로 보이는 유키와 대조적으로 경직된 것만 같은 제 모습에 모모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부턴 노래를 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던가 하는 변명은 통하지 않으니까. 프로. 고작 두 글자로 된 단어는 아직 막 걸음을 뗀 모모에게조차 완벽할 것을 강요했다. 막상 파트너인 유키는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하지만, 괜찮을 리 없다는 건 모모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처음 찍었을 때는 잘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몇 달 만에 이렇게 인상이 달라 보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만큼 보는 눈이 좋아졌다는 거지만, 이왕 좋아진 거 몇 달만 더 빨랐으면 좋았을 텐데. 유키도 엄청 잘생겼고, 유키의 노래도 엄청나게 좋은데 이것 때문에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 걱정됐다. 커버보다 노래가 더 중요하니까, 다들 많이 사서 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분명 유키의 노래가 좋다는 걸 다들 알아줄 테니까.

다시 모모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주변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 Re:vale의 싱글이 잔뜩 놓인 매대도 가끔 사람 한둘이 흘끗 보고 지나가는 정도였다. 오전 시간대라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찾아오긴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한산한 것 같아. CD를 품에 안은 채로 눈을 도륵도륵 굴리던 모모가 곁으로 다가오는 여학생 둘을 눈치채고는 급하게 뒷편에 있는 매대로 이동했다. 다행히 그리 이상해 보이진 않았던 건지 아니면 관심이 없었던 건지, 여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떠들기 바빴다.

“이것 봐! 엄청 미남. 아이돌인가? 그러니까, 이름이…… 어떻게 읽는 거지?”

“리바레……라고 읽는 것 같아. 여기 써 있는데?”

“아, 들어본 적 있어! 친구가 엄청 좋아하던데. 잘생기고 노래도 좋다고.”

“그래? 아, 이거 오늘 나온 거였네. 그럼 한 번 사볼까?”

“그럼 나도! 아, 잠깐. 이거 사진 찍어서 걔한테 보내줘야겠다.”

쌓여있는 싱글 사진을 찍는 셔터 소리에 모모의 심장이 쿵쿵 울렸다. 여학생들이 각자 하나씩, Re:vale의 CD를 손에 쥐고 가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 숨 쉬는 것조차 잊고 바라보았다. ……노래,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비록 예전과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유키의 노래는 변함 없으니까. 나중에 라이브에도 오면 어떡하지? 그렇게 생각하니 좀 더 열심히 연습해야 할 것 같았다.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찾을 수 있을 리가 없겠지만, 만약에라도 유키의 노래를 좋아해서 오게 된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모모는 CD를 쥔 손을 쭉 뻗었다. 역시 아이돌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노래에 관심도 없던 사람인데도 고작 이 작은 사진 하나가 걸음을 멈추게 만드니까. 역시 유키는 대단해. 잘생겼다는 거, 분명 유키 얘기겠지.

‘나는 그냥 유키가 노래를 그만두지 않도록 잠깐 옆에 있어 주는 것 뿐이니까.’

그래도 기분 좋다. 지금은 내가 유키 옆에 있으니까. 다들 좋아해 주는 아이돌 유키는 내가 지켜낸 거니까. 유키도 처음에는 걱정하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이렇게 같이 노래도 부르고 데뷔도 할 만큼 신뢰해주고 있었다.

그 증거가 모모의 손에 들려있는 이 조그마한 CD였다.

“……역시 사야겠다.”

돌아가면 똑같은 싱글이 있겠지만 이것만큼은 직접 사고 싶었다. 언젠가는 돌려줘야겠지만, 분명히 있었다는 것 만큼은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어서.

두 여학생이 계산을 끝마치고 나서 카운터에서 계산을 했다. 커버에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들어가 있는 탓에 계산하면서 들키지 않을까 허둥대던 모모가 지갑을 떨궜는데, 직원은 별 생각 없는지 싱글을 뒤집어 바코드를 찍을 뿐이었다. 모모는 어색하게 웃으며 계산을 마치고는 황급히 가게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려. 누가 볼 새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모모는 CD 하나만 든 비닐봉투를 품에 꼭 안은 채로 급하게 자리를 벗어났다. 그 탓에 때마침 레코드 샵 앞을 지나가던, 찾아 마지 않던 사람을 미처 보지 못했다.

“반리 씨, 뭔가 있나요?”

“……아, 츠무기. 미안, 미안. 잠깐 낯익은 이름을 봐서. 잠깐 보고 가도 될까?”

“네, 전 괜찮아요! 아이돌, 좋아하세요?”

“응, 좋은 노래를 부르는 녀석이 있거든.”

유키와 모모, 두 사람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보고 미소지은 남자는 모모와 교대하듯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때요, 유키 씨?”

“뭐가?”

“노래요! 좋았어요?”

“그야…… 안 좋았으면 데뷔하자고 할 리가 없잖아.”

모모에게 당연하다는 듯 대꾸한 유키가 플레이어에서 CD를 빼냈다. 노래 경험이라곤 전무하다시피 한 모모가 유키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한 것은 노력이라는 말로도 다 설명하기 힘들 정도였다. 평범한 기준이라면 모르겠지만, 원래 음악을 하던 사람 대부분에게조차 혹평을 아낌없이 하는 유키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말 그대로 아슬아슬한 커트라인이었고, 초보자인 모모를 배려해 곡도 모모에게 맞춰서 쓴 거긴 했지만. 그래도 유키의 성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이 노래도 레코딩 현장에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모모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몇 번이나 다시 녹음한 끝에 완성한 것이었으니 유키의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보통 이런 데는 전문 디렉터가 붙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가난한 사무소에서 유키의 마음에 차는 사람을 데려올 수 있을 리 없으니 대부분의 과정에 유키가 관여했다. 모모는 아무 것도 못해서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했지만, 그 힘든 레슨 중간중간에 아르바이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유키를 위해 몸을 축내면서 생활비를 벌어왔던 건 모모였기에 그 정도 쯤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유키가 집에서 곡을 만지고 있으면 한밤중이 되어서야 모모가 집에 들어와서는 기절하듯이 잠드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그나마 요즘은 아이돌 일이 조금씩이나마 늘고 있어서 모모도 이렇게 종종 쉴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이었다.

“그러는 모모는 어떤데?”

“저야 당연히 엄청 좋았죠! 유키 씨의 노래, 정말 좋아하니까요.”

“그래? 다행이네. 모모 군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잘 팔릴 것 같아.”

메이저 데뷔를 해서 일이 늘어나는 건 좋지만, 노래가 모모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용 없으니까. 모모와 함께 부른 노래가 대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조금은 걱정했지만 모모가 좋다고 하니 괜찮을 것 같았다.

물론 많이 팔려야 모모에게 맛있는 고기를 잔뜩 사줄 수 있었기에 욕심은 있었다. 실제로 자신도 있고. 반리와 함께 할 때는 인디즈지만 생활에 지장이 없을 만큼의 돈은 벌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컨텍을 할 정도로 인지도도 높았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함께 음악적인 고민을 해줄 파트너가 없어서 종종 헤매게 되는 건 사실이지만, 모모는 모모 나름대로 열심히 도와주고 있으니까. 몇 날 며칠을 곡만 붙들고 있었을 때는 힘들어서 죽을 지경이었는데, 막상 이렇게 메이저 데뷔까지 하고 나니 혼자서도 해볼 만한 것 같았다. 애초에 반리 없이 곡을 만들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고, 모모도 전문적인 수준의 어드바이스는 어려워해도 좋다 나쁘다 정도는 확실하게 이야기해 주는 편이었기에 아예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유키를 좋아한다고 했으면서, 모모는 그런 부분에서는 굉장히 까다로운 편이었다.

‘혼자 작곡하는 게 익숙해지면 반을 찾아도 모모랑 같이 할 거라고 이쪽에서 뻥 차버려야지.’

생각하면 할수록 퍽 유쾌한 복수였다. 애초에 말도 안 하고 멋대로 사라져 버렸으면서 다시 같이 시작하자고 뻔뻔하게 얼굴 들이미는 쪽이 잘못이지. 지금 와서 생각하면 괘씸하기 그지없는 행보였다. 멋대로 사라진 반리 덕분에 고생하고 있는 건 유키와 모모였으니까. 물론 거기에는 유키의 행동이 지대하게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유키가 그런 데에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일이 벌어지진 않았을 터였다.

“아, 맞아. 모모 군.”

“네?”

“메이저 데뷔도 했는데, 슬슬 그 ‘씨’는 빼도 되지 않아?”

뜬금없는 말에 모모의 입이 헤 벌어졌다가, “안되거든요?!” 라고 크게 소리쳤다. 정작 유키가 큰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자 소리친 사람이 되려 당황해서는 죄송하다며 사과하는 모양새가 됐지만.

유키와 모모가 함께하게 된 이후부터 종종 나오는 이야기였다. 번거롭기도 하고 이제 같은 그룹이니 편하게 이름으로 부르라는 유키와 경칭이 편하다며 어떻게 유키를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겠냐면서 극구 싫다는 모모. 평소라면 모모가 유키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것으로 마무리되겠지만, 유독 이 이야기만큼은 모모가 고집을 부리는 통에 아직까지도 결론이 나질 않았다.

“카메라나 팬들 앞에서는 잘만 부르면서.”

“그건, 어쩔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팬들 앞에서 유키 씨라고 부를 순 없잖아요?”

“평소에도 이름으로 불러. 구분하기 불편하잖아.”

“전혀 안 불편하거든요.”

“내가 불편해.”

“……그럼 유키 씨만 이름으로 부르시던가요.”

오늘이야말로 지지 않겠다는 듯 따박따박 대답하는 유키의 태도에 모모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유키의 표정이 조금이라도 안 좋아지면 사과하고 거리를 벌렸던 예전과는 영 딴판이었다. 확실히 같이 살면서 예전에 비하면 많이 서스럼 없어지긴 했는데, 왜 유독 이름 부르는 것만큼은 안 하려고 드는지. 초면인 상대에게조차 그리 예의를 차리지 않는 유키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고집도 세서 쉽게 물러나지도 않고.

아마 유키가 겪어왔던 사람 중에선 모모가 제일 까다롭지 않을까. 어떤 상황이라도 대체로 얼굴 하나면 만사가 해결되는 상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키가 배려하지 않아도 상관 없을 만큼 어른스럽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동거를 시작한 지 벌써 몇 달이 지났고, 그동안 볼 꼴 못 볼 꼴 다 본데다가 오늘 본격적으로 메이저 데뷔까지 했는데도 아직까지 데면데면하게 경칭을 쓰고 있다고 하면 아무리 두 사람을 좋아하는 팬이라도 놀라서 뒤집어질 터였다. 처음에는 평소에 사용하던 호칭을 갑자기 바꾸는 건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무대 위에서 하는 걸 보니 그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서스럼없이 이름을 부르는 모습에 유키가 당황할 지경이었다.

“나만 부르는 거 불공평하지 않아?”

“그치만, 좋아하는 아이돌을 어떻게 이름으로…….”

“다들 잘만 부르던데. 모모 군 이름 불러주는 애들도 요즘 꽤 늘었잖아.”

처음 모모가 무대에 설 때만 해도 미묘한 분위기였는데, 요즘에는 시끄러워서 이름 말고는 뭐라고 말하는지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유키가 모모에게 이름을 불린 횟수보다 얼굴도 모르는 팬이 유키의 이름을 멋대로 부른 횟수가 더 많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아마 더 많겠지만.

“진짜……. 그래도 안 된다니까요…….”

“정말로?”

“……정말로.”

부끄럼을 타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이런 식이다 보니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름 하나 부르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 이름 하나 갖고 물고 늘어지는 쪽도 비슷하다는 건 이미 안중에도 없는 유키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모모가 이 얼굴과 목소리에 약하다는 사실쯤은 같이 살기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니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불길한 느낌에 모모가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나려 들자, 유키가 냉큼 이름을 불렀다.

“모모, 얼른.”

“그거 반칙이라고요?!”

모모는 어김없이 과한 반응을 보였다. 원래도 혈색이 돌던 얼굴색이 완전히 붉어져서는, 입을 꾹 다문 채로 억울하다는 듯 유키에게 젖은 눈을 향하는 모습은 앳된 외모와 어우러져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되려 그 반응을 정면으로 보게 된 유키의 입장에서는 대체 어쩌라는 건가 싶었지만. 부르라고 해서 부른 건데. 먼저 말 놓으라고 하는 것도 싫다고 했으면서 이름도 못 부르게 하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물론 모모에게 이름을 부르길 종용하는 태도를 쏙 빼놓고 생각하는 건 유키의 특기였다.

“모모랑 더 사이 좋아지기 위해서라면 반칙이든 뭐든 할 거야.”

“지금도 사이 좋잖아요……?”

“난 경어 쓰는 사람이랑은 영 불편하더라.”

“……진짜 치사해.”

“후후. 그러니까 얼른 모모도 이름 불러봐.”

자, 자. 유키는 부추기듯 추임새를 넣었다. 정작 모모는 여전히 불만스러운지 유키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웃는 낯에는 침도 뱉지 못한다고, 저 잘생긴 얼굴로 웃고 있으니 뭐라고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게 된 원인부터가 유키의 얼굴에 홀랑 넘어가 버린 전적이 몇 번인가 있는 모모 때문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밀어내기엔 너무 잘생긴 얼굴이 아닌가. 모모의 반응은 아랑곳않고 방싯방싯 웃고 있는 유키의 모습에는 결국 두손 두발 다 들 수 밖에 없었다.

“……아, 정말! 내가 졌으니까. 유키! 이제 됐어?”

“응. 잘했어.”

부끄럼을 타기는 커녕 오히려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이름을 불렀는데도 유키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오히려 뭐가 그리 좋은지 모모의 머리를 쓰다듬을 따름이었다. 사석에서 모모가 유키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워낙 드물다 보니 이런 반응을 하는 것도 어쩔 수 없었지만. 유키는 모모와 이런 식으로 함께하기 전부터 계속 편하게 불러줬으면 했으니, 눈만 마주쳐도 도망치기 바빴던 모모의 이런 변화가 기껍기만 했다. 정말로 화를 내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고, 이런 식으로 불만을 표하는 것도 이전보다 모모가 유키를 친근하게 생각한다는 신호였으니까.

결국 그 반응에 맥이 빠진 모모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됐어. 대신 맛있는 거 만들어 줘. 싱글 나온 기념으로.”

“그럼 오랜만에 실력 발휘 해야겠네. 맛은 모모가 대신 봐 줘. 뭐 먹고 싶어?”

실력 발휘라고는 해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만큼 장부터 봐야 할 것 같지만. 모모도 마침 쉬는 날이니 같이 나가면 되겠다. 평소에는 모모랑 같이 장을 보면 저녁 타임 세일 시간에 맞춰서 나가지만, 오늘은 그런 거 말고 비싼 고기 살 예정이었으니까. 가격이 부담되긴 했지만, 그 정도는 금방 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반리와 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도 메이저 데뷔는 하지 않았으니까. 원래 이런 건 사무소에서 챙겨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사무소에 비용 청구 되려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으면 모모가 음식 이름을 하나둘 입에 담았다. 햄버그에 고기조림에 제육볶음에…… 조촐한 음식 이름을 듣고 있다 보면 모모에게 고작 이 정도 음식조차 해주지 못했었다는 사실이 유키의 심장을 쿡쿡 찔렀다. 그만큼 유키도 못 먹은 건 마찬가지지만, 모모는 많이 움직이는 만큼 유키보다 훨씬 많은 영양분이 필요할 테니까. 모모가 입에 담은 음식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머릿속에 꼭꼭 새겨넣었다. 양이 많은 만큼 오늘 전부 해주는 건 무리겠지만, 하나씩 만들어 줘야지.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유키와 모모는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딛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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